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해서 해방되어집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롬8:2)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뜻은 '사랑으로 연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2.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성 교제가 시작될 때에 상대방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교제 또한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3. 이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합니다. 결혼식만 안올렸다 뿐이지 혼인서약은 이미 했고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등록해서 법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는 상태와 유사합니다.
4. 그러나 신혼집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 신랑은 부활의 몸으로 타국(천국)으로 간 상황입니다.
5. 그런데 집이 천국에 마련될 예정이므로 자신도 믿음안에서 부활해야만 거처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6. 하지만 거처는 그리스도가 준비한다고 해도 신부의 믿음의 행동에 의해 처소가 결정됩니다.
(눅14:3,4)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7. 그러나 이 결혼은 초혼이 아닙니다. 재혼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이혼상황에서 나를 받아주고 진정으로 사랑해줄 새로운 신랑을 찾게 된 것입니다.
8. 이혼한 대상은 예전에 사랑했던 전 남편 '마귀'입니다.
9. 그러나 가끔 옛 남편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있기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 (6,12절)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상태로 주를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13절)
11. 신랑이 큰 뜻을 품고 있기에 그 뜻에 순종하면서 신랑과 재회를 기다립니다. (11절)
12. 그러나 부활은 죽음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죽음의 끝이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13절)
13.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며 지상에서 고귀한 직무도 시작되어 본인의 상급에도 영향이 미칩니다
14.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믿음의 선한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결국 최종 승리자(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8절)
15. 그 때는 믿음과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16. 왜냐하면 믿음에 의해서 새로운 하늘과 땅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7절)
그리스도인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묵상한 성경의 큰 그림을 보며 믿음으로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을 받고 최후 승리를 얻는 그림까지 보며 행동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를 믿으며 단독자로서의 실존적인 신앙생활의 초대에 응해보시는 것을 권면 드립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것은 일체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말씀의 순종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순종 자체가 빛이기 때문에 어두움이 물러가게 됩니다.
반대로 순종하지 않고 우물쭈물 댄다거나 순종과 유혹사이 중에서 심적으로 갈등하고 있다면 이미 어둠의 힘의 일부가 생각과 마음가운데 잠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반경이 일정한 죄의 굴레와 함께 머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틀에 갇힌 채 신앙의 딜레마에 빠져 일생동안 비전과 섭리의 갈증을 실현시키지 못한 실패한 삶으로 머무르게 됩니다.
그렇게 '아모스' 선지자의 교훈이 다시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아모스 선자지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심판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스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아브라함의 자손(하나님의 자녀)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도 여전히 발생합니다.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들은 구약에 이미 다 있었던 말씀입니다. 이미 기록된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레위기 19:18)을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 율법을 다시 주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사도 바울이 핵심 포인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렇게 기록을 하였을까요?
누군가는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의 ‘표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표징은 ‘일정하게 일어나는 죄악의 패턴의 반복’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사건처럼 죄악의 패턴이 반복되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의미 없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주어진 기회를 소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시간이 지속적으로 주어져도 죄악의 패턴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그렇게 한정된 시간이 종료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종료되는 이유는 죄와 사망의 힘의 영향을 받아 인생에서 희생제사만 반복할 뿐 실존적인 굴레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독자들에게 “성령세례”의 뜻을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이해시키려 한 것입니다.
단순히 법적으로 이해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그 해법을 이해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법도 중요하지만 결혼생활의 현실도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혼을 제기당할 만큼의 영적 간음(분리)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다면...)
그냥 법적으로 성령께서 해방시켜주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믿는다면, 그러한 권면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삶에 표징(빛)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연합의 긴장감을 이해하지 못하여 죄악의 굴레로부터 몸과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홍해’사건과 ‘침례(세례)’의식은 결국 “성령세례”를 이해시키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성령세례’를 이해시키기 위하여서 홍해사건과 침례의식이라는 역사와 학습이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홍해와 세례사건으로만 만족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 ‘의식’이 궁극적으로 상징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면 결국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처럼 표면적 그리스도인의 인생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할례와 같이 세례의 의미를 모른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성령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게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실체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실체인 것처럼 할례 및 세례가 실체가 아니라 성령이 실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어야할 대상은 예수그리스도와 성령 즉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구분되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최종 심판의 '양'과 '염소'는 결국 성령의 인침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겉모습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지만 누가 성령의 인정을 받았으냐에 따라 좌우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현재능동태) 는 것입니다. 육신은 마귀의 지배를 의미하며 성령을 따르는 주체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單獨者)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을 따르는 것을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현재 자신이 육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육신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3차원을 지배하는 영에 의해 지배받은 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귀의 세력에 붙잡혀 삽니다. 그 이유는 그 영들의 세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붙잡혀 있다는 것은 현재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영의 일을 하려면 성령을 따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영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지하게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먼저 살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의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사망과 생명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느냐 또는 영의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사망과 생명으로 갈리어집니다. 이것은 유다서에서 교훈하는 것처럼 하늘의 영적 전쟁의 결과가 지상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그 책임을 은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하늘의 뜻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교훈을 믿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나 행동으로 증명이 되지 않기에 그 열매로 인하여 그들의 신분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됩니다.
흔히 “그리스도인이 죽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여기서 '죽는다'는 의미는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몸의 행실을 맨 정신으로 죽이지 못하듯 반드시 '죽음'과 '거듭남'을 경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하려면 성령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죽어야 한다'는 직접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 성령을 따르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행실을 죽이는것은 성령을 따르지 아니하면 불가능합니다.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인도함(동행)을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사랑한다고 가정이 행복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결혼과 가족(일반은총)이라는 제도를 주신 이유는 모든 것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애초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 제도가 섭리에 의해 예정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메시야보다 먼저인 것이나 이스라엘이 이방인보다 먼저인 이유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이해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반드시 먼저 일어나야만 성령에 의해 그 역사를 토대로 인문학적으로도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인간이 깨닫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동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쇄술의 발달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개혁 자체만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올바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섭리는 종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깨닫는 사람에 의해 사람마다 부분적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화'는 종합적 사고와 전인적 성장에 의해 점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행동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돌이켜보면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습니까? 시간에 따라 덜 성숙했던 모습들이 미래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시간의 함수에 따라 인간의 미숙함을 깨달아 나아갈진대 하나님의 계시를 논하기엔 일반계시만으로는 쉽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일반계시만으로는 구원의 궁금증까지는 도달할 수 있어도 수수께끼를 완전히 풀지는 못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알수도 없을 뿐더러 순종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순종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믿음 자체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거꾸로, 순종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왜 그러한지 생각해보고 죽는 결단을 해야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육신으로 살았던 모든 죄악들을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또 제자들이 기다리며 50일간 기도함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성령의 능력이 자신안에서 새롭게 태어날때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능력들이 우리 삶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영적 전투를 의미하기에 가나안땅에서 우상숭배한 자들을 몰아내었던 것 같이 우리 마음안에서 옛 구습의 모습들을 몰아내는 영적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새롭게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구원이 저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싸워서 승리함으로써 더 확실하게 순결한 주님의 백성이 되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순종을 통해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깨달아지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빛의 자녀라고 확실히 이해되는 순간 그 순간에 여러분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는 큰 결단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두움을 벗고 빛의 사자가 비로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제는 "육신을 따르지 말고 더욱 하나님의 영을 따르라"고 교훈하는 것입니다.
PS.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곧 그 은혜가 없이는 그 어떤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이루어 지기때문에 주님께 더욱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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