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7: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율법 학자인 바울은 율법이 거룩한 것임을 알고 있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오히려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는 죄를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15절)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불법을 행할 때에는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그것을 행한 것이 아니라 내속에 거하는 죄가 연약한 나를 부추켜 내가 원하지도 아니한 그것을 행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로써 율법이 지극히 선한 것임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16절)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즉 율법은 결국 사람이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려주어 더 확실히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율법은 지극히 선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결국 이러한 죄로부터 구원시킬 수 있는 구세주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러므로 바울은 한 법칙을 깨달았다고 말씀합니다. 바울뿐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법칙 안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원하는 바를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한다는 것은 곧 자신 안에 여전히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리스도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의 법을 마음속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이미)
하지만 우리 자아는 아직 연약함으로 이 죄의 법을 이길 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연약한 육신에 의해 우리는 다시 마귀에게 사로잡혀 다시 포승줄에 묶임으로 원치 아니하는 그곳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로마서에서는 그로인한 그들의 행동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과 나약함을 마귀가 정확히 꿰뚫고 기선 제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인간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합니다. 지극히 연약한 것을 적나라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그 세력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영적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인간)를 건져내겠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누가(Who)에 해당하는 대상은 어둠을 이기는 세력을 의미합니다. 어둠을 이기는 세력은 창조질서를 통해 알려주셨듯이 빛의 세력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밤거리를 안전하게 다니려면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불 아래의 길로 다녀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사망의 몸으로부터 구원해 줄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4절)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그리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을 통해 최소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도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방법은 단 하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이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곧 새로운 부활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부활은 실재입니다. 그러나 실재가 있기 전에 항상 그림자가 존재해왔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부활이 있기 전에 믿음을 통해 우리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을 그리스도 앞에 내려놓는 행위가 선재되어야 하는 것을 알게 합니다. 즉 최종적인 부활은 반드시 선재되는 믿음의 행동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들의 겉모습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진정 그들가운데 믿음의 행동이 있는 사람은 누구될 것인가?'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8장에서는
믿음의 행동 즉 믿음의 행위에 따라 사망과 생명이 나뉘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본문이 들어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롬8:5,6) 그리고 '믿음의 행위는 어떻게 생성되는 것인가?'를 다루게 될 것 또한 알게 되는 것입니다.(롬8:4) 왜냐하면 그동안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해 왔었기 때문에 그 율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그 구체적 방법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또한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바울의 시도 자체가' 율법이 요구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눈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앞에 우리 자신의 노력의 한계로 인한 수많은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는 도저히 어떠한 답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 이르도록 그 율법이 우리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말문이 턱 막혀진 상황에 이르면 '눈물'이 나옵니다. 구원받기위해 쉴새없이 달려왔지만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여전히 죄인이라면 그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처럼 그러한 비참한 현실 앞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롬8:15)
바울의 이런 시도로 인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에 결국 구원자를 발견하게 하는 율법의 목적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비단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그리스도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원전 유대인들 또한 같은 방법 즉 율법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를 통해서 구원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시편110편 1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편 110:1) |
시편110편은 다윗 왕이 지은 시입니다.
이 시를 보면 다윗 왕은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의 주로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행2:35;히1:13;10:13)
이 시편 기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눅20:41-44)
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직접 그 시편을 주해하여 깨우치시기를 메시야 이전의 사람들도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주고 고백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구약의 사람들 또한 율법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일으키는 근원이 (3차원이라는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초월적 힘에 의해 이루어 진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곧 이러한 구원이라는 입구를 안내하는 것(오직 한 길)은 율법이며
그 율법이 메시야에게로 인도(그 길은 좁고 험하며)하고
메시야는 세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천국)의 구원의 관문을 지나가도록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볼때) '그 율법'이 삶에 당장 필요 없는 것처럼 여겨질 지라도 성령에 의해 깨닫는 순간에는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현실에 처해 있지만 그 상황가운데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어떠한 영적인 깨달음의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없던 지식이었으나 특정한 사건 이후에 그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고 그 지식으로 인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구원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므로 이제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롬8:1-14) 김정국 목사 (0) | 2022.06.08 |
---|---|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 (롬7:24-롬8:2) 김정국 목사 (0) | 2022.05.23 |
율법은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롬7:5-13) 김정국 목사 (0) | 2022.04.20 |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롬7:1-4) 김정국 목사 (0) | 2022.03.19 |
순종으로 부르시는 주 (롬6:1-23) 김정국 목사 (0) | 2022.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