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마서

율법은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롬7:5-13) 김정국 목사

by jk-kim 2022. 4. 20.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본문에서는 현재 우리의 상태는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인데 예전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사망의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죄의 정욕 때문입니다.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절에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 곧 옛 남편인 마귀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창세기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옛 뱀’인 마귀의 꾐에 빠져 지식나무를 먹게 됨으로 선악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는 선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마귀가 그것을 먹도록 유혹한 것은 처음부터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주어지면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대인은 율법을 받아 선을 알게 되었음에도 선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시간을 따라 각 왕정시대를 통한 죄의 가속화 그래프로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에 따라 빛에서 어둠으로

다윗왕의 실수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이 둘로 나눠지고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남 유다가 죄악으로 인해 각각 멸망당하는 것을 구약의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불순종이 곧 저주로 이어진다는 교훈을 선지자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불법의 최종 열매는 결국 사망입니다)

따라서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최종 사망이 확정된 것이기에 그 심판 시점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그 사망 심판을 백성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이 시기는 바로 빛의 영향력의 퍼센테이지가 제로에 근접하였던 때 곧(흑암)의 때입니다.

(이사야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의(율법)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주로 인정하는 자마다 왕 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축복을 받는 이유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결과는 저주와 축복을 의미하며 우리는 모든 저주의 결과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하였기에은혜로 인하여 우리의 거듭난 육신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조문의 묵은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야고보서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합니다.
https://good-friend.tistory.com/37


본문은 율법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이 부분은 유다서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합니다.
https://good-friend.tistory.com/43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3절은 율법 즉 계명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명은 선악을 확실히 알게 하여 인간이 결국 죄인을 것을 시인하게함으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24)은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라고 기록되었으며

히브리서 10장 1절은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그리스도께 이끄는 초등교사이자 예수님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14절도 율법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따라서 율법이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이므로 그리스도는 이 율법의 실체가 되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구원에 대하여 이해를 시키기 위해 그 계획을 율법을 통하여 스포(미리결말을 알리다)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이해시키기 위한 형상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히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


따라서 롬5:14처럼 결국 그리스도는 이 율법을 이루신 최초의 사람 즉 성경이 예언해 온 두 번째 아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이처럼 율법을 이루는 방법을 율법이 설명하는 것보다 더 완벽하게 이루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을 우리는 복음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죄의 최종 결과를 사망이라고 언급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사망의 대가를 치르셨으며 또한

율법이 제 일 되는 계명이 ‘사랑’이라고 하셨기에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내려와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사랑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동물의 제사법과 차별법은 없어지는 것은 맞지만 사랑에 관련한 법은 폐기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완전함을 위해 그 특성이 변화되어 원수 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법으로 변형이 된 것입니다. 이미 야고보서를 통해 언급하였으므로 생략합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하여 얻기 위해서는 주님처럼 버리고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율법주의나 효과 없는 방편으로 치우쳐 이해하였더라도 이제는 율법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비참함을 깨닫게 하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문) https://blog.naver.com/jk9892/222002924675


그러므로 신약시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율법에 대하여 새롭게 정리하여 주시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차별없이 사랑하고 더 이상 보복으로 갚지 말고 용서와 사랑으로 대신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게 하는 사명을 가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계명이 더 빈틈없이 완벽해 졌기에 지키기에 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은혜로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하여금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은혜의 법)


그런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여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확실히 차별할 수 있는 율법은 '할례'이기에 그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유대인들만이 교훈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행실로 인하여 비판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의 지위가 변화지 않을 ‘할례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할례만이 유대인이 영원히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 유일한 정치적 대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지도자이기 때문에 지도자로 있을 때 유리한 고지에서 결정하려 한 것입니다. 할례를 지키기로 결정한다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대인이 지키는 다른 전통도 결국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바울도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면서 랍비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결정에 따라 오늘날과 같이 이방교회의 지도자는 이방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독교가 유대화되지 않도록 율법의 맹점을 언급하면서도 결론을 내릴 때는 “율법은 선한 것이다”로 귀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의 형식(할례)만을 중시하면서 다른 율법은 지켜도 되고 안지켜도 되는 의미로 생활했기 때문입니다.(외식)

따라서 율법은 안지켜서 되는 문제도 아니고 지극히 선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라고 교훈하면서 진정으로 주의해야할 것은 '형식주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할례자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키는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롬2:27)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완성된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구약의 할례'는 '진정한 할례'의 '스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옛 가죽부대가 결코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갈등이 일어날 것을 주님께서 아셨기에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항상 되어질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 방식을 사용하심으로써 주께 의지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교회의 질서를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