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려 하지만 결국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였습니다. (롬7:25)
그래서 이와 같은 죄와 사망의 몸에서 "누가 인간을 건져낼 수 있겠는가?"하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4절)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건져내주실 분은 누구(WHO)실까요?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5절)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HOW)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본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바울이 이 교훈을 깨닫기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인해 정죄함을 받은 상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고자 함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단계를 순서적으로 설명하여 줌으로써 단번에 구원받은 상태에서 이제는 자신이 한번 더 구원을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단번에 구원받은 상태란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모두가 포함됩니다 그들은 분명 이러한 은혜를 받아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한번 더 구원을 이룬다는 뜻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자신이 죽는 단계를 경험하여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지 아니하면 성령으로 거듭날 수도 없으므로 부활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믿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는 배신도 하고 부인하기도 하고 달아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다시 기도한 후에는 성령 체험을 체험하며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 인격이 성화되어 사단의 공격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장소적 천국에 직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모 이단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구원을 몇 날 몇시에 구원을 받았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그 정확한 시간을 모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이단의 계략에 넘어가게 됩니다. 교리는 구원받았다고 하나 자신의 삶은 구원받지 않은 삶이기 때문에 혼란이 와서 이단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수확을 위해 이러한 모략꾼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여 교회를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오늘날 교회는 자신의 영적 상태를 감지하지도 못한 채 도덕적으로 더 문란해지고 헤이해져서 사회적으로도 지탄을 받아 사람들의 외면받까지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율은 빠른속도로 감소하고 있는데 콘크리트층의 기독교인이 고령층인걸 고려해 볼 때에 인구 감소까지 감안한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치닫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부족한 교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아직도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는지 정리되지 못한상태에서 그렇게 성경의 예언에 의해 적그리스도에게 넘어가는 현상을 우리가 목도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 회피가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놓으셨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인가요?
하지만 그러한 주된 교리가 바로 우리가 살펴보는 로마서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인데 교리는 복수인 상황입니다. 다시말하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해석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하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이단에도 빠지기도 하는데 이단들도 모두 성경에 근거해서 활동을 합니다. 다만 교리가 다르고 해석이 달라 삶이 달라질 뿐입니다. 그렇게 교인들의 삶이 심각한 오류를 빗게 됩니다. 영적 침체가 와도 도대체 어디에서 잘못되었으며 또 어떻게 늪을 빠져나가야 하는지 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종교개혁이 그랬듯이 개혁은 성경의 본래의 의미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어 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 교인들을 향하여 기록한 서신입니다.
로마 교인들을 위해 기록했다는 것은 무신론자를 위해서가 아닌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교회의 상황은 지금 분열중에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분열을 일으켰을까요?
율법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에 대한 깨우침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율법으로 인해 다투고 있지만 분열의 근본 원인은 '구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로마서가 초신자들에게도 적합한 말씀"이라는 주장도 맞는 말이 됩니다.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단계적이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 중 일부는 구원을 받았지만 일부는 구원을 받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성령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할 만큼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두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열이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분열의 핵심은 "구원"문제입니다.
우리가 로마서 8장을 읽어보면 '이미와 아직'이라는 예정교리의 대표적인 신학개념을 배울 수 있습니다.
로마서 본문에서 등장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중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표면적 그리스도인'의 상태에 있습니다. 표면적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렇지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할례는 받지는 않았어도 그들의 성품과 행실 그리고 평판으로보아 바울은 '이면적 그리스도인'의 상태에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1. 모든 죄인이 은혜를 받고 단번에 구원을 받았다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표면적+이면적 그리스도인)
2.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표식(성령)을 받은 자만이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들 중 누가(Who)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4. '이면적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자격이 구원의 길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자들에 의해 천국과 구원의 계시가 반응한다는 사실입니다. )
5. 성령에 의해 지혜(계시)를 깨닫지 못하면 그 성품과 삶이 온전해 질 수 없습니다.
6. 그래서 지혜를 깨닫는 방법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어야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종말론적으로도 부활이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8. 따라서 구원은 죽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거듭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신약- "(매일) 죽노라", 2)구약-율법: "거룩을 유지하라." 3) 결국 성령은 이 둘의 요구 모두를 충족시키십니다.)
9. 그러므로 장소적, 혈통적 구원의 깨달음은 '표면적 그리스도인'의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언약적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행실은 ->여전히 이방인)
10. 따라서 구원은 자신의 마음안에서 찾는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안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발견해야 열매가 맺혀집니다. 율법의 조문이 먼저가 아니라 반대로 마음안에 맺혀진 열매에 의해 율법조문이 이루어지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지만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마음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원의 깨달음이나 감정 또한 마음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롬13:9)
11.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는다는 것은 천국에 이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기 위해 오히려 저 아래에 있는 땅속 뿌리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로 성장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기]
12. 땅속 뿌리로 내려간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안에 그리스도(공급원)를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13. 따라서 구원을 깨달은 사람은 모든 것이 세상의 법칙과 반대가 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표면적 그리스도인'과 '이면적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결정적으로 '차이'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서의 [믿음]과 야고보서의 [행함]이 대치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5. 우리는 결국 교리의 오해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 그래서 오늘날은 성경해석을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만큼 '신학이 다양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17.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How) 성령으로 거듭나느냐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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