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첫째로 율법은 스포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어요. 마지막 결말을 미리 알려준다는 거예요. 율법을 통하여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게 한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율법을 통하여 미리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죄에 따라 사망이 이르게 되는 거구나. 우리는 비참한 존재이구나. 이것을 알게 하는 것이 율법이다. 그래서 율법이 선한 것이다 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죄와 그리고 심판을 알게 하기 때문에
그리고 두 번째는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 길을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께 안내하는 몽학선생이다. 초등학교 교사와 같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율법은 사람들을 깨닫게 하여서 그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한다. 율법 자체가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하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그 나아감으로써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의 육신안에 있는 그 율법이 우리의 마음의 법과 싸워서 죄의법으로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롬7:23)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것을 시인하게 한다 그래서 24절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으로다.'결국 시인하게 되는 거예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분이 바로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려 하지만 여전히 육신의 법과 싸워서 결국에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죄의 법을 섬길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태의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거예요.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결되었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깨달았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깨달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이다.
그 해결은 무엇인가? 8장 1절에서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하여 해방되어진다 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이루어진다.
8장 2절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예수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먼저가 아니다라는 거예요. 그것이 먼저가 아니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먼저이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려주고 있는 말씀이다라는 거예요.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베드로도 또한 마찬가지. 베드로 사도도 또한 연합의 비밀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사도 바울도 연합에 대한 그 풍성함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모든 것들이 모든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에 있다는 거예요. 이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감추어졌던 모든 비밀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거예요. 누구를 통해서? 예수님께 주신 그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감추어졌던 그 비밀들을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1.사랑으로 연합되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성교제가 시작될 때에 상대방의 성품을 알게 되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교제 또한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세 번째는 이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합니다. 그냥 사귐이 아니라 결혼을 전제로 한 교제라는 거예요. 결혼식만 안 올렸다 뿐이지 혼인서약은 이미 했고 그래서 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 법적으로 혼인관계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신혼집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그 처소를 예비하기 위하여 신랑이 결국 마지막 날에 부활의 몸으로 우리와 다시 재회하기 위하여 천국으로 먼저 간 상황입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다섯 번째는 집이 천국에 마련될 예정이므로 자신도 믿음 안에서 부활해야만 그 처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는 그 거처가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다고 해도 신부 믿음의 행동에 의해 처소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최종 결정되는 것은 신부의 믿음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3-4은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이 결혼은 초혼이 아닙니다 재혼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이혼 상황에서 나를 받아주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새로운 신랑을 찾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마귀의 뜻대로 살아가는 종의 신분이었어요.
그리고 여덟 번째는 이혼한 대상은 예전에 사랑했던 전 남편 곧'마귀'입니다. 따라서 결혼은 누구의 뜻에 살아가는가 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결혼이란 신랑의 뜻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최종적인 결정권을 신랑에게 둬요 왜냐하면 성경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신랑이 결국에는 머리가 된다라는 거예요 우리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누구의 뜻에 살아가는가? 그 뜻에 하나가 되는가. 결국에는 연합은 뜻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하늘의 뜻이 결국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통일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결국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누구를 통해선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거예요. 연합의 모든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 없이는 그것들을 깨달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옛 남편이 그릴 때가 있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것이 당장은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유익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직 세상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만날 수도 있습니다. 누구와 만난다는 거예요. 신랑을 놔두고, 음탕한 고멜과 같이 우리가 세상과 언제든지 연합할 수 있다. 그 여지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구원은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딴 마음 먹으면 언제든지 세상과 연합될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열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순결한 상태로 주를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사람은 (신랑)그리스도이다.
열 한 번째는 신랑이 큰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하면서 신랑과의 재회를 기다립니다. 왜 순종해야 되는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열 두 번째는 부활은 죽음이 선행되어야 가능합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써 부활을 소망으로 품고 나아가는 사람이 결국에는 행동이 수반된다라는 거예요. 그것이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행동이 나타날 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믿지 않기 때문에 왜 해야 되는가. 믿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소망 때문에. 그래서 순종하면서 재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부활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죽음의 끝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이라고 13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죽어야 끝난다. 그 죽음은 우리의 육체가 있어야만 죽는 거예요. 육체가 없으면 죽을 수가 없잖아요. 육체가 있어야만 죽는 것인데 그 죽음의 의미를 가장 가치있게 만들어라 라는 것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그 육체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동안에는 그 육체가 죄의 법과 싸워서 졌다라는 거예요.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하여 어떻게 되는가? 이게 성경에서 말씀하는 포인트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열세 번 째는 성령으로 거듭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며 지상에서의 고귀한 직무도 시작이 돼요.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우리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거예요. 뜻이 하나로 된다고 그랬잖아요. 예수님께서 하신 직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직무가 우리의 직무가 되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직무가 우리의 직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당연히 져야만 하는 십자가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열 네 번째는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다. 밖에 있으면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주님과 우리가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다는 거예요. 순종이 안 되는 거예요. 순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선순위가 예수님과는 전혀 달라요. 기도도 다르고 뜻하는 바도 결정적으로 다 빗나갑니다. 기쁨으로 받기는 받아도 나중에 금방 시험에 들어서 넘어진다는 거예요.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최종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의 모델을 본받아 우리도 이기는 자가 되라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길을 좁은 길로 안내하시는 거예요 선한 싸움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고(롬8:17) 말씀하고 있어요. 이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고난도 받아야 한다. 육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열다섯 번째는 승리자가 되는 그때는 믿음과 소망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때입니다. 그때는 알게 된다. 승리자가 되면.
왜냐하면 열여섯 번째는 믿음에 의해서 새로운 하늘과 땅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육신을 마귀에게 져서 그 육신대로 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육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바로 보혜사 성령님 때문에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성령으로 인하여 깨닫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하고 싶었던 거예요. 이제는 할 수 있다. 이제는. 예전에는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다. 복음을 믿지 않는 자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거예요. 모든 것이 복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동행할 때 그때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합되었기 때문에 알려주시는 거예요.
따라서 이 복음으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했는데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복음을 믿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난이 필요하다.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우리가 그 고난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그 육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있다. 왜냐하면 깨닫는 자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복음을 증거한다는 거예요. 깨닫지 않으면 증거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열정도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님께 의지하여야만 열정도 다시 살아나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안내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통로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고난이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 쾌락을 즐기지는 못하기 때문에. 육체를 그대로 방치시키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약간의 고난을 우리가 알고도 (좁은 길을)간다는 거예요. 알고도. 그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행동이 수반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연합되었다는 것은 성령님으로 인하여 이제는 영적으로 싸울 준비가 되어간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싸울 준비가 되어져 간다 함은 이전에는 싸우면 100% 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승리하여 육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으로서 육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무력화시키고 육체가 해야 할 일들을 비로소 그때부터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아가게 하시는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영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이 성령님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육신과 싸워 이기며 우리 육신을 승리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당한 자가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육신을 어떻게 사용하여 최후 우리의 멸류관을 얻을지는 주님께 받을 그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회개함으로 나아가시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로써 오늘도 또한 정결하게 되고 그 거룩함으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로마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러므로 이제 성령을 따라 행하십시오! (롬8:1-14) 김정국 목사 (0) | 2022.06.08 |
---|---|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 (롬7:24-롬8:2) 김정국 목사 (0) | 2022.05.23 |
율법의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은 (1)정죄함과 (2)은혜의 통로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롬7:14- 25) 김정국 목사 (0) | 2022.05.09 |
율법은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롬7:5-13) 김정국 목사 (0) | 2022.04.20 |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 것은...(롬7:1-4) 김정국 목사 (0) | 2022.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