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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온 세상을 위한 '자유의 율법' (약2:8-13) 김정국 목사

by jk-kim 2021. 8. 23.

야고보서는 박해로 인하여 ‘흩어지게 된 팔레스타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살필때에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본문의 앞뒤 문맥을 연결하는 '자유의 율법'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야고보가 왜 '자유의 율법'이라는 어구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하는 것입니다.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본문은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다음 3가지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그것은
1. 차별하는 말고
2. 간음하지 말며
3.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율법에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9-11절)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의 계명인데
왜 본문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옛 계명'까지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의 계명이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눅10:27)
1)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2 )"네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두 계명이 합쳐진 계명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계명은 열 계명이 압축된 계명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십계명 중
1)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고
2)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십계명은
‘~하라’는 긍정의 계명(248계명)과
‘~하지 말라’는 부정의 계명(365계명)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율법입니다

따라서 ‘새 계명’은 옛 계명의 613계명이 하나로 압축된 계명인 것이며, 처음부터 율법 중에서 '최고의 계명'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율법을 우리에게 다시 전달하신 이유는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렘31:31-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새 계명은 잘 지키고 있는데 단지 옛 계명만 지키지 않고 있다"는 말은 결국 하나님을 속이고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계명이나 옛 계명이나 동일한 법이라고 요한1서2:7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한1서 2:7)

하지만 옛 계명은 두 돌판에 새겨졌고 새 계명은 마음판에 새겨지기 때문에 그 성질까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렘31:33)

그러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본문은 12절의 '자유의 율법'이라는 성경어구를 통하여 그 의미를 알 수 있게끔 하였습니다.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본문에서는 '자유의 율법'의 의미를 알 수 있도록 두 가지 힌트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말과 행위를 함에 있어서 심판받을 자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2절)

두 번째는,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을 것이기에 마땅히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13절)
그 이유로는 "긍휼을 베푸는 자야말로 최후 심판의 승리자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13절)

이를 종합해 볼때

심판이
1. 말과 행위나
2. 긍휼의 순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면

결국 구원은 '순종'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소망을 이룰 수도 있지만 불순종으로 언제든 타락할 수가 있다"는 의미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옛 율법에 불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책망한 것입니다.
불순종은 심판을 야기시키기 때문입니다.(10,11절)

우리는 이 문맥을 토대로 '자유의 율법'이라는 어구가 다음 세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유의 율법은
1. '순종'이라는 결과를 도출합니다.(12,13절)
2.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의무를 상기시킵니다.(12,13절)
3. 차별없는 공의와 긍휼로 안내합니다. (12,13절)

따라서 '자유의 율법'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으로 이끌려는 특성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옛 율법과 형태는 같지만 그 목적과 성질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2: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이와같이 성질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존 체계와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존체계인 (옛 가죽부대)에 어울리지 않은 이유는 이 법을 담는 그릇이 유대인만을 위한 그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율법'이방인을 양자삼기 위한 특수한 법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 말씀과 같이 제한이 해제되면서 차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2장은 차별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였습니다. (약2:4절)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차별이 없어졌다는 것을 성령께서 이해시키시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부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기록합니다.

이렇게 성령에 순종하는 지도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뜻이 점차적으로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새로운 법'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법이 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병든 자나 건강한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제는 너와 나의 차별조차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최고의 율법인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법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모든 율법에 차별을 없애면 어떠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구약성경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방인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법을 적용하면 그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방인의 음식은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이 적용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음식의 자유가 있습니다.
(음식으로 이방인과 구별시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음식때문에 이방인을 멀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만일 이런 이유로 멀리한다면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위한 의복, 머리, 그리고 수염 등등 이러한 조항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위한 절기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전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위한 절기는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방인들에게 적합한 절기와 기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오늘날 새롭게 생겨난 절기들은 무엇이 있나요?
대표적으로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 추수감사절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자녀로 삼을 것이기 때문에 '변화된 성질'입니다.
포도주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9:17; 막2:22)
포도주의 성질이 바뀌었으므로 ‘옛 가죽부대’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이스라엘법의 테두리가 이방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법은 유대인들이 알아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유대교)
'모든 민족을 위한 가죽부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기독교)

따라서 '새 가죽부대'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법’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계약의 주체’는 어떻게 바뀌게 되는 것일까요?
계약의 주체는 ‘유대인’에서 ‘온 세상 사람들’ 바뀌는 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보혈(피)로 (새로운 계약이) 체결이 됩니다.

이 체결자 예수 그리스도는 장사한지 3일만에 부활로서 그 자격을 증명을 하심으로 승천하셨기에
이것을 본 오백 여명의 증인들에 의해 영생의 확신이 전파 된 것입니다.
모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도록 바꾸셨다는 것을 부활 사건때문에 비로소 믿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의 율법'은 부활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부활의 특성과 연관이 있다면 믿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죠.


이제 우리는 '자유의 율법'을 통해 ‘세계 모든 민족’의 언약으로 복음이 확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옛 가죽부대가 결코 감당하지 못하는 '새로운 성질'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단들의 오류가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떤 이단들은 유대인들이 먹는 음식과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를 합니다. 맞는 말일까요?
그것은 틀린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지켜야 되는 계명인가요?

토요일 안식일은 유대인을 위한 계명이므로 유대인들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에 주일의 개념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모든것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관이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주일날 쉽니다. 하나님께서 로마를 통해 세계 달력을 바꿔 주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로마가 바뀌어지기 위해서는 순교자들의 희생이 필요했는데 12명의 사도(바울포함)와 함께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죠. 물론 죽음의 공포나 두려움보다 믿음의 힘이 훨씬 강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죽을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의미들이 부활합니다. 부활한다는 것은 다시 살게된 주체가 새로 생겨난 의미를 공유하여 삶에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파되는 것은 부활에 대한 의미가 전파되는 것이죠.)

기독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무덤에 있는 날(안식일)보다는 부활의 날(주일)을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안식일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의 죽음도 의미가 있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것 대신에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키고 있는지 이제는 이해가 되시죠?

이처럼 '가죽부대의 성질에 맞지 않은 것들은 폐지'가 되고 '가죽부대의 성질에 맞는 것들은 유지'가 되어 온전해진 율법의 새 가죽부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의지하는 자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것이지만 많은 것들을 깨닫는 은혜가 있게 되며,
그것으로 인해 또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되겠지만, 약속된 말씀과 사명을 끝까지 붙잡고 승리할 것입니다.
과거 희미한 것들이 지각이 뚜렷해짐에 따라 믿음과 행동의 결단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이것은 꼭 천국이라는 장소에 가야만 뚜렷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을 이해하면 할수록 진리안에서 자유할 것이며 주님께 영광된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한 확신으로 모든 것을 행동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미련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행동들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은혜로 인한 '상대적인 차이'도 발생하게 됩니다.(마태효과 현상)

이것은 세상의 것들을 천국에서 통용되는 보석으로 바꾸는 구체적 행동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마11: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의 것을 믿음으로 가져가고 죽을때에 약속된 자녀의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결국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되는 과정인 것이죠.

많은 사람이 우둔한 일을 해도 스데반은 확신을 가지고 옳은 일을 행하였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평안이 오면 두려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본질을 찾게 되면 그 능력이 여러분을 보호할 것입니다. 참 평강이 두려움으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그렇게 성령안에서 새롭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듭난 자는 '자유의 율법'을 이해하게 되고
그 반대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그리스도께 이끄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갈3:24)

이전의 허물들과 죄악의 일들은 '빛의 능력' 앞에 시간속으로 밀려나게 되고
'새로운 의미'들이 눈앞에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정리하면서...

야고보서 2장은 새 계명만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계명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새 계명은 옛 계명의 함축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에게 옛 계명까지 지키지 않는다면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이나 옛 계명이나 똑같은 계명인데 이를 잘못 이해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께서는 복음에 걸맞는 다른차원의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열매가 심판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자유의 율법'이라는 성경어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자유의 율법은 '모든 인류에게 자유를 주는 법'으로 그 성질이 바뀐 법을 의미합니다.
모든 차별이 없어졌으며 보복의 법이 용서와 긍휼로 바뀌었습니다.
더 완전해졌기에 사람이 지키기에는 불가능한 법이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을 언급한 것일까요?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지 않은 채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그 모든 죄의 행동이 결국 심판과 연결될 것임을 성령께서 이해시키시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옛 율법을 지키라고 한 것은 그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려하면 할수록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율법을 도저히 지킬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진정한 참 자유를 주시는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그 긍휼하심을 입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