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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야고보서 개요

by jk-kim 2021. 7. 25.

1. 저자: 야고보

영어 성경에서는 야고보의 저자를 ‘James’ 라고 부르는데 헬라어는 ‘야코보스’ 히브리어는 ‘야아코브’ 즉 ‘야곱’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글 성경번역은 ‘야고보’라고 표기합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를 ‘야고보’라고 말한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는 오리겐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이 매우 흔했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도 일곱 명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요한의 형제이며 사도들 가운데 첫째 순교자 (막1:19; 행12:2)
②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예수님의 제자 (마10:3)
③ 작은 야고보 (막15:40)
④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 (눅6:16; 행1:13)
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 (막6:3; 갈1:19)
⑥ 유다의 형제 야고보 (유1:1)
⑦ 야고보서의 저자 야고보 (약1:1)



이들 중 ⑤와 ⑥은 동일 인물입니다만 ②③④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요한의 형제로서 일찍 순교한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저자일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자신을 사도라고 밝혔을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인물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유다의 형제 야고보인데 막6:3은 유다의 형제 야고보 역시 예수님의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막6: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따라서 동일 인물인 ⑤⑥이 야고보서의 저자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입증할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는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가 한 연설한 내용과 야고보서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행15:23의 인사말

약1:1의 인사말(“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의 구조가 일치합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의 저자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로 보는 것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헬라어가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제와 같은 소박한 유대인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헬라어 서신을 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히브리어 성경이 아닌 칠십인경을 자주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야고보서에는 번역문으로 보기 힘든 다양한 헬라어 문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유려한 헬라어 문체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갈릴리 지역에는 헬라 성읍들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갈릴리 사람이라면 헬라어를 체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도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이 적어도 예루살렘에서는 헬라어로 설교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달리다굼’, ‘에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등의 아람어도 예수님이 늘 아람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유별나게 그 순간에 아람어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이런 아람어 용어들은 예수님이 평소에 아람어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의 근거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예수님이 평소에 헬라어를 자주 사용하셨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항상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면 복음서 기자들은 이를 일관되게 헬라어로 번역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헬라어로 말씀하시다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만 아람어로 말씀하셨다면,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헬라어로 말씀하시다가 유독 그 단어들을 아람어로 하신 것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그 단어들을 헬라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남아 있는 예수님의 아람어 용어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헬라어를 항상은 아니라고 해도 흔히 사용하셨다는 근거일 수 있습니다. 아람어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그 동쪽에서 주로 사용하던 언어이지만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자들 가운데는 먼 서부 지역에서 온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설교하시려면 아람어보다는 헬라어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야고보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야고보의 헬라어 실력을 무조건 형편없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야고보의 자기 소개

그런데 왜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라고 명확하게 부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가 예수님의 형제라는 것을 독자들이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혹은 야고보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인간적인 형제 관계보다 믿음의 형제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자신을 낮춰 소개하는 야고보는 자신을 독자들과 같은 수준의 믿음의 동료로 취급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님의 형제로 소개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그가 예수님의 형제가 아니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야고보의 이력

야고보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막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막3:31-35)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요한복음에서도 그의 형제들이 믿지 않고 있음을 (요7:5)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을 통해 야고보는 비로소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고전15:5-8)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야고보는 부활사건이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 졌으며, 이는 곧 예루살렘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그는 의장으로 활동했으며, 안디옥의 이방 신자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 저작시기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으며, AD62년에 순교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그 시기 이전에 기록되었어야 합니다.
또한 야고보서는 베드로전서 사이의 일치점들 때문에라도 AD62년경 이전에 쓰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두 책들 사이에 일치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흩어진 자들에 대한 언급 (약1:1; 벧전1:1)
② 말씀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는 것 (약1:18; 벧전1:23)
③ 믿음의 시험 (약1:2; 벧전1:6-7)
④ 하나님께 순복하고 마귀를 대적하는 것 (약4:7; 벧전5:6,9)

그러나 이런 공통점들이 있다고 해서 두 책의 저작 시기를 비슷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의 책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들이 나타나는 것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보존하고, 정형화시키고, 전달하는 데 있어서 공통적인 사도적 전승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바울의 서신들을 읽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야고보서를 기록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야고보서는 적어도 최초의 바울서신이 기록된 다음에야 쓰여 졌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고,(약2:22) 바울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갈2:16) 그러나 야고보서 자체는 바울과의 논쟁을 암시하지 않고 오히려 약2:14-21에서 마7:21-28의 예수님의 교훈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본다면 야고보는 바울을 염두 해 두고 이 서신을 쓴 것이 아니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서신서를 쓰기 전이나, 전도여행을 가기 전인 AD44년 이전으로 야고보서의 저작 시기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야고보서는 신약 성경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야고보서에 예루살렘 멸망(AD70)에 관한 내용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야고보서가 그보다 이른 시기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해 주는 근거가 됩니다.



3. 원래의 독자들은 누구일까요?

(야고보서 1:1)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12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를 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호로스헤이더(Grosheide)는 이 용어가 '새로운 이스라엘인, 기독교’를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 2:2에 ‘너희 회당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들이 회당에서 모였음을 말합니다. 또 야고보서 5:12에는 맹세에 대한 금지가 나오는데 ‘하늘로’ 혹은 ‘땅으로’ 맹세한다는 것은 유대적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② 그렇다면 ‘흩어짐’(diaspora)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유대 기독교인들은 스데반의 일로 인해 예루살렘 밖으로 도망하였습니다.(행8:1-4) 사도행전11:19에 따르면 그들의 행선지는 모두 북쪽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학자 뮐더(Mulder)는 시리아 안디옥 지역을, 흐레이다누스(Greijdanis)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지역(약5:7)을 꼽았으며 판 브릭헌(J. van Bruggen)은 팔레스타인 내부를 야고보서의 독자들이 살던 지역으로 생각하였습니다.

AD.3세기에 처음으로 야고보서를 인용한 ‘처녀성에 관하여(De Virginitate)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이 쓰여진 곳은 팔레스타인이었습니다. 이를 종합해 본다면, 야고보서 최초의 독자들이 있던 곳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는 스데반의 박해로 인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 유대인 기독교인들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출처: 설교자를 위한 공동서신 강해(이레서원. 김병국.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 신약학교수)


그렇기 때문에 박해 이후에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영적메시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예루살렘 공의회 의장으로 활동했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대표하여서 그들을 향하여 붓을 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두려움으로 인해 흩어진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향해 ‘행함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라고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