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드로전후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 (벧후3:1-18) 김정국 목사

by jk-kim 2022. 7. 17.

사도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의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쓰는 목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성도들이 가졌던 진실한 마음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 그들로 하여금 예전의 순수했던 마음이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1절)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진실한 마음’이라 함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명한 것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 그 말씀을 기억하도록 했을까요?
그 이유는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성도들 일부가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게 함으로 명철하게 판단하라는 뜻입니다. (2절)


2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성도들은 참 진리를 말하는 목자를 스스로 가려낼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잠시 판단이 흐려졌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케 하면 이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목자의 음성을 잊어버린 양들에게 목자의 음성이 기억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의 양들이라면 결국 목자의 음성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음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옛 부터 내려온 성경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뜻을 분별하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기 위하여 성령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길을 잃은 양이라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 음성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듣고 그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영적인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에 계시를 전하는 베드로 사도의 음성과 같이 목자의 음성을 안내하는 주의 종들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갈수록 이러한 주의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이 흔들릴 때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계시를 받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회복시키고 인생에 대한 분명한 초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말세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성도들은 더욱 더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3절)

그들은 다음과 같이 성도들을 설득합니다.

“당신들은 현 상황을 보면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입니까?
다 거짓말입니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곧 오시겠다는 그 분이 정작 핍박 당하는 이들을 외면하고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습니까? 전부 조작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강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옛적부터 주어진 말씀이 있지만 당장 처해진 핍박 앞에 전해진 말씀은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그 말씀과 은혜를 일부러 잊으려고까지 합니다. (5절)


6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하지만 노아의 홍수 때에 물이 넘침으로 인해 어리석은 자들의 몸과 영혼이 멸망에 이른 것 같이 부지불식간에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7절)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것같이 여겨질지라도 심판의 날은 갑작스럽게 임할 것이며 큰 소리와 함께 하늘과 모든 물질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은밀히 행한 모든 일들도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10,12절)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11절)


주의 거룩한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강림을 소망해야 합니다.(11,12절)


11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주의 강림을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그 바램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것입니다.) (13절)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1. 그것은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소망 때문입니다.

2. 또한 그 약속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여전히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망극(罔極)하신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러므로 주의 성도들은 상 그리스도 앞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당장 심판이 임한다 할지라도 평강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경건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14절)

이제는 헛된 가르침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도록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 기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8절)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 생각해 보기

그리스도의 강림은 왜 더디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리스도의 강림이 이토록 더디 이루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오래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과거에 진실 된 마음으로 주를 사랑했던 그 기억들을 소환시킴으로 하나님께 돌아섰던 성도들을 회개시키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하루만 지났을 뿐인데도
천년의 세월을 기다린 것 같은 애타는 마음이셔라.

하지만 천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하루같이 여기심은

돌아오지 않은 자녀들로 인해
예정된 천년에서 단 하루의 시간만을 빼시는 것만 허용하시기 때문이라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날을 알지 못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자녀들을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

오늘도 우리 주님이 여전히 셈을 참으시는 이유는
우리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주님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