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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후서

반복되는 역사와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 (벧후2:1) 김정국 목사

by jk-kim 2022. 7. 13.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셔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든든히 서도록 '공의의 법'을 주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법을 소홀히 하면서도

물질의 번영과 쾌락을 주는 우상에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 이유는 할례를 받은 언약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상을 기반으로 옛적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는데 거짓선지자들은 예언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주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축복을 주셔서 천국가는 날까지 인도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렇게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들은 인기가 많았고 물질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대중들과 함께 영적으로 그렇게 서서히 소멸해 갔습니다.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북이스라엘의 영광은 한 순간에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멸망에까지 이르렀는데, 고난을 당하며 목숨을 바친 참선지자들의 예언은 성경의 기록으로 영원히 남아 오늘날까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역사는 세월이 흘러도 반복적으로 흐르는 것임을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1절)

예전에 '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이 여전히 일어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멘토’가 거짓의 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활동 기반과 기한은 세상에서 최후의 심판 때까지 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무질서는 베드로 전서에서 깨어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언급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베드로후서 2,3장은 유다서와도 유사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야고보(예루살렘 공의회 의장)와 마찬가지로 유다와도 친분을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 유다와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동행하며 설교한 바 있고 유다는 페르시아에서도 설교하다 순교하였습니다. (https://good-friend.tistory.com/42?category=941222)

 

 

이처럼 베드로전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교회는 바로 유다의 피로 세워진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베드로후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유다서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베드로가 유다서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다가 (예수님의 3대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유다와 함께 흩어진 사마리아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성경의 예언을 이루어 갔습니다. 

 

(사도행전1:7,8)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즉 바벨론으로 강제 이송된 이스라엘 형제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도들이 바로 베드로와 유다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들은 바벨론 각지와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진 사마리아 형제에게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서 실라가 베드로의 다리역할을 하였고(벧전5:12) 사도 바울은 그 바턴을 이어 유럽과 로마 그리고 스페인(땅끝)에 이르기까지의 사명을 감당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의 사역과 사도바울의 사역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 그리고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사마리아)에게 복음을 전한 반면 사도바울은 이중국적 유대인랍비 출신답게 땅 끝에 해당되는 이방인들을 전도하기 위한 그릇으로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9: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이처럼 성령께서는 아시아로 가려던 바울을 유럽(마게도냐)으로 인도하신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사도 바울이 남아있는 시간동안에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행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즉 성령께서는 이스라엘의 흩어진 모든 나그네들에게 복음의 기회를 주신 다음에 비로소 아브라함의 약속을 생각하사 이방나라에도 복음이 들어가도록 바울을 세워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로마와 유럽 대부분 지역은 기독교국가가 되었지만 소아시아 지역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해 회교국가로 바뀌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성령께서는 요한을 통하여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특별한 계시가 전달되도록 하셨지만 결국 그곳은 다른복음으로 물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아무쪼록 특별히 계시가 전달되었다하더라도 구원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특별한 효력이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게 됩니다.

"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