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가 일어나는 시기는
주의 백성들이 방심하거나 믿음이 흔들리는 때입니다.
그들을 미혹시키는 영이 자주 이용하는 방법은
자녀의 표식(할례,세례)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타겟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에게 있는 자녀의 표식(세례)을 짐승의 표식(불법)으로 바꾸어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2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따라서 표식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할례나 세례(참례)의 표식이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 행위가 짐승의 표식(불법)이면 선악간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그 표식이 없는 자라 할 지라도 회개하여 그 마음에 표식(성령의 인침)을 받으면 그는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즉 구약의 율법이 의미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할례나 세례가 의미하는 것이 성령세례 곧 거룩한 백성을 칭하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1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거짓 선생들은 고난을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그 행위는 우상에 잠시 무릎을 꿇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1절)
그러나 그들이 (세례의)표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를 맘대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맘대로 해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짓 영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헛된 회개'에 물들게 하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아닌데 '회개'라고 여기게끔 '혼동'을 줍니다. (결국 침륜[沈淪]에 빠지도록 합니다. )
그래서 그들은
1. 우선적으로 지도자를 포섭하여 본을 보이지 못할 상태에 이르게 한 후에,
2. 가르치는 것과 '본'이 반대가 되도록 하여
3. 교회가 세상으로 하여금 판단 받는 상태에까지 이르도록 합니다. (2절)
여기까지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이단이 언제 발생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단이 발생하는 때는 거짓 교사들이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여 교회를 장악했을 때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사도는 그것을 막기 위하여 서신을 작성한 것입니다.)
교회를 장악한다는 것은 교회가 도덕적으로 문란해져서 교회와 이단의 힘이 역전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이단간의 수평이동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서로 교차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스러운 교회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이단 세력이 연약한 성도들을 일방적으로 데려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더 이상 교회의 가르침이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덕이 되지 못할 때 이단의 활동은 더욱 더 탄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즉 교회의 부패가 이단의 먹잇거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회가 약해질 수록 이단이 그 영양분을 먹고 강성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단을 육성시키는 장본인이 (깨어있지 못하는) 교회로 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이단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가 (세상의)영향력의 중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미 심판받은 세 부류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먼저는 범죄한 천사들이며 (4절)
둘째는 노아시대에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이며 (5절)
셋째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무법한 자들입니다. (6절)
성경이 심판받은 세 부류에 대해서 말씀하는 이유는 주께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를 형벌 아래에 두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9절)
9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베드로 사도가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음에도 타락하였기 때문이며, 그들의 비방하는 말과 행동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10,11절)
10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는 그들을 '이긴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이긴 자들은 사탄입니다. 그들은 다시 사단의 미혹에 빠져서 다시 그들의 종이 되기로 결심한 자들입니다. (19절)
19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그들이 다시 마귀의 종이 되면서 누릴 수 혜택은 세상에서 더 많은 쾌락과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15,16절)
그렇게 스스로 다시 마귀의 종이 되며, 자신이 다시 종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채,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속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계시가 전달되었어도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13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이와 같은 일들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동들입니다. (12절)
12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육신에 속한 자들은 없어질 안개에 심취해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캄캄한 어둠이 예비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17절)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들은 과거에 심판받았던 세 부류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세례 받은 언약백성이라는 그 이유 만으로 자신들에게는 은혜와 긍휼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맹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빠진 것도 그들의 선택에 기인합니다.
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심판이 가볍기라도 했을 텐데 이미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분히 받은 이후이기 때문에 이미 알고도 지은 그 죄 로 인하여 (이 세상의 안개가 걷힌 후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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