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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후서

그리스도의 지옥강하(descendit ad inferna)가 의미하는 것은 [베드로전서3:8-22] 김정국 목사

by jk-kim 2022. 6. 29.

베드로전서는 상대방이 누가 되느냐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환경과 인물에 따라 처한 상황에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 일체의 흔들림 없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일관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어느 누구나 불쌍히 여기고 또 사랑하여 세상으로 복이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자신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존대하셨던 것처럼 또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합한다는 것은 겸손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이와 같은 성품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소명' 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복이자 가업'입니다. (9절)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악에서 떠나 '거룩한 본'에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기도 응답 여부가 결정됩니다. (12절) 기도응답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복과 저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신30: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이처럼 믿음과 행함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왜 '겸손'을 언급하였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은혜를 지속시키는 힘이 '겸손'에 있습니다. (8절) 그리스도앞에 자신을 낮추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경배'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할지라도 항상 미리 대답할 말을 정하여 위협함으로 죽이는 자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산 자와 죽은 자를  영원히 심판하시는 주를 두려워함으로 ‘마음’을 순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잠언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뒤 3일 동안의 행적에 대한 기록입니다.(19절) 

그리스도의 영이 음부[陰府]에 내려가게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지옥강하의 목적은 과거에 심판을 받았던 불순종의 영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선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노아를 통해서 전해진 복음이 결국 이루어졌다는 것을 첫번째 심판받은 자들에게 선포하여 판결을 확증하시고자 함입니다. 

성령께서는 왜 이러한 사건의 전말을 베드로에게만 알려주셨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불시험'가운데에 있는 '고난'받는 터키지역의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그 계시가 유일하게 밝혀져야 했느냐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심판''구원'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난'과 연관이 있다는 뜻은 '나그네'의 삶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목적이 드러나도록 서두에 기록하였습니다.(벧전1:1)

그렇게 해서 시험받아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계시가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지옥강하 후 낙원에 있는 강도에게도 보이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심판장으로서 그들에 대한 판결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지상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고난과 시험중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심판''부활'이 있음을 더 확실히 믿게 하기 위함이며 교회의 정체성의 범위를 광역화[廣域化]하시면서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계시로 알려주신 이유는 
복음의 ‘순종’이(본=나그네의 삶) 천국과 지옥의 당락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오래 참고 기다리심이 바로 ‘이 때’를 가리키는 것임을 교훈하시고자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20절)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들은 원래 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으나 타락하여 불순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심으로써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죄악의 낙을 즐기는 것을 더 좋게 여겨 방주에 들어오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몸과 영혼이 심판받은 것입니다. 

21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은 심판의 상징이면서 구원하는 표입니다. 하지만 ‘물’(세례) 자체가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는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육체의 소욕을 죽이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1절)

비둘기를 보고 성령을 연상하는 것처럼 물을 보고 보이지 않는 천상의 이치를 깨우치게 하셨습니다.

 

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이와 같은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본받아 승리토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은혜와 은총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