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연역적으로 쓰여졌고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이 서두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의 주제 문구를 표현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을 언급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이 어떻게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찬송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예정하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왜 예정하셨을까요?
만물을 통일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하늘에 있는 것으로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정하셨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의 피로 구속을 예정하셨습니다.
그 화목제물을 통하여 삶으로 친히 화목제를 드리신 대제사장(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심판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셔서 그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는 것(양자)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능력은 겉으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속사람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에베소서는 그 속사람이 변하는 과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속사람이 변화되나요?
주님의 예정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곧 화목제물되심이라고 앞서 언급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화목제물을 통하여 성령을 주시며 성령을 주심은 유대인들로 인해 돌판(법조문)에 새겨진 그 율법이 폐하여진고로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엡2:15)(충만한 수가 다 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인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새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새언약은 효과가 없는 옛언약인 돌판이 아니라 속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심령에 새겨진 것이기 때문에 그 은총의 효과가 겉으로 드러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인들은 그 효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며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이전에 그러한 계시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엡3:4-5) 그들의 행동이 이전으로 돌아갔지만(옛사람) 이제는 바울을 통하여 계시를 받기 때문에 그 계시가 에베소 교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지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전달되도록 서신의 기록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엡4:17-24; 1:1)
속사람은 계시를 통한 성령의 역사로 변화됩니다. 변화된다는 것은 계시를 통한 깨달음이 전제됩니다.
그 깨달음이 성령으로 인하여 새사람이 되게 합니다. (엡4:7-8)
그래서 엡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술 취하는 외형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곧 속사람의 변화를 통해서만이 바꿀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조문 자체로는 그것이 율법의 의는 될지언정 사람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율법의 기능의 한계; 율법의 기능은 그리스도에게까지 인도하는 데 있습니다. 그 이상은 성령의 법과 연관이 있습니다.(롬8))
그럼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엡6:13-18)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해당 구절은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서서 진리로 띠를 띠고 ...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런데 에베소 교인들이 옛사람의 형상이 여전히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세상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대의 구분을 넘어섭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적인)사탄의 음성으로부터 승리하려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은 그 믿음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것을 뜻하며(6:16) 복음을 여전히 증거하면서 말씀안에서(그리스도안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바울이 본을 보이는 대로) 이러한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하심 안에 감추어졌던 비밀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은 옛사람의 행위는 진노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것입니다.(엡5:6)
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기다릴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멀어졌다는 것은 그 총명이 사라지고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엡4:18) [에베소서에서 그것은 영적인 잠{때론 어린아이의 상태(아직 분별이 부족하고 힘이없는 상태)이기에 넘어지는 모습(불순종)(4:14)}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빛의 공급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둠으로부터의 해방) 에베소서에서는 이 빛이 말씀으로 표현되었는데 이 빛은 교회를 통하여 공급을 받습니다.
(엡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고 한다면, 반대로 순종(빛)하는 아들들(자녀)은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 받게 되는데 그것은 주님의 경륜(예정하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는 빛의 자녀의 행동 즉 ‘선한 행동’을 가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엡5:8-13; 4:29)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궁극적인 방법은
다시 복음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엡6:7-13)(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예정된 사역, 다시 처음의 명령을 기억하는 것; 그의 나라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것(계1:6))
그것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그 예정하심대로 주의 자녀들은 그 육체를 주님의 말씀에 복종시켜서 그 육체를 의의 무기로 사용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예복이라 함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미리 준비된 옷을 입는 것을 뜻하며 천국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갈 때 입어야 되는 옷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는 신부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을 뜻하지만 천국에서는 아들의 옷을 의미합니다. 약속의 유업을 받을 자격이 다 갖추어졌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 하늘의 천사와 같이 변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러면 예정된 하나님의 형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예수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 연합 안에 있을 때만이 우리의 행위는 온전해지며 예정된 모습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후에 에베소교회는 계시록에서 책망을 받게 되는데(계2:1-7) 그 이유는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려 그들의 선한 행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연합이 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교회를 통하여 회개의 기회가 여러 번 주어지게 되는데(고멜,탕자의 비유) 그 빛을 통하여(섭리) 그리스도인들은 잠자는 자가 깨어나듯 다시 일어나 (세상에) 빛을 발하는 존재로 세워져 갑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