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순종'의 법칙을 적용하십시오 (벧전2:13-3:7) 김정국 목사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에 순종해야 함을 먼저 피력한 뒤에 세상의 주관자뿐만 아니라 직장 상사 및 그 제도가 불합리해도 주를 위해서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상관이나 혹은 위정자들이 까다롭게 군다 할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행을 베품으로 하나님의 뜻이 공명정대함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만일 신앙을 저해하기위해 순교를 원할경우 저해하려는 그들의 말에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라 대항하지 말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순교까지 각오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악을 악으로 보응하지 않는것이 포인트입니다.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그리스도를 생각함으로 참아 인내하면 주께서 미덕으로 기억하실 것이지만 죄를 지음으로 고난을 받는다면 어떠한 칭찬도 없을 것입니다.
16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그리스도인은 자유가 있으나 죄악을 되풀이하는데 속죄권을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선을 행해야 함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는 반복적인 후퇴를 위해 주신것이 아니라 거듭남과 성장을 위해 주셨습니다.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기 전에는 세상에서 방황하였을지라도 믿은 후부터는 목자를 따르는 자녀들로 거듭났기 때문에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자취를 따라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
그리스도인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남편의 구원이 아내의 행실로 인하여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 혹은 친구같이 가까운 사이에는 말로 전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행실을 상대방이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 행실이 바르다면 전도하기는 쉬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성경적인 전도의 법칙은 때로는 말이 아니라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착한 행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본인과 상대방이 동시에 구원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마음속으로부터 밝혀지기 때문이며, 불신자들은 그 밝혀진 빛을 보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넘치는 은혜 또한 공유받기 때문입니다.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하나님께 소망을 둔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신을 단장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여전히 추앙받는 믿음의 조상인 이유는 그들이 복을 받을 만한 ‘믿음의 본’을 ‘후손’에게 남겼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면서 순종하였기 때문에 그 ‘본’을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또다른 방법은 믿음의 조상들의 ‘본’을 따르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것이나 믿음의 조상들의 본을 따르는 것이나 ‘구원’을 얻는다는 효과 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구원의 확장성측면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의 행동이 사라와 같은 패턴으로 나타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나 그리스도를 따랐던 사도들을 따르는 것이나 모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성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문은 구원의 역사하는 힘이 말씀과 성령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오시게 될 메시야를 믿음으로 자신들의 본을 삼았기에 고난이나 시험이 왔어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본'을 따르는 행실이 중요합니다. '본을 따름'은 자신과 타인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인 이유는 사라와 같이 하나님을 주라 칭하고 그분을 삶의 본으로 삼아 구원에 부합하는 모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주로 삼고 사라는 그런 아브라함을 주로 삼아 그 본에 순종하였기 때문에 후손들에 의해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에게 뿐 만 아니라 대대로 전해지는 후손들에게도 가치가 있습니다.
7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성경은 남편들에게도 이와 같이 성경의 지식을 따라 아내와 모든 좋은 것을 공유하여 약속된 기업을 함께 물려받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7절)
왜냐하면 불화가 일어나면 둘 모두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본'이 '본'으로 연결되듯이 막히지 않고 기다란 하나의 띠로 연결되어질 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축복의 법칙이 세상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뻗어나간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