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십시오(베드로전서2:1-12) 김정국 목사

jk-kim 2022. 6. 25. 19:18

'순례자'의 길을 다짐할 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전의 악한 습성' 즉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


그런데 1절은 11절과 2절은 12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도 함께 살펴보면 

11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절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순례자'는 "육신의 정욕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갓난 아기와 같이 "전하고 신령한 영양분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이 구원에 이를 만큼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2절)

갓난아이에게는 어머니의 젖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씹을 만큼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어머니의 젖은 갓난아이에게 필수적입니다. 여성이 성장하면서 신체적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도 '갓난 아이'와 같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갈4:6;롬8:15) 거듭나게 하신 성령께서 구원에 이르도록 영양분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죄의 세력으로부터 참 자유함을 얻게 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는 죄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절대적 힘을 기반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죄가 타락의 힘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상기하면서 성령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합니다.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였을지라도 믿은 후에는 새롭게 변화된 구체적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자신을 비방했던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한 일이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날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오늘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아는’(비판자가 되는)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더라도 말씀을 행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8절)

(야고보서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믿음’을 그 증거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 ‘본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본문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재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거룩한 제사를 드릴 정도’의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5절)

'복음'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성질이 아닙니다. 폭발적으로 반응하여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하는데 이르기까지의 운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처럼 그안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을 받았으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도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질은 반석과도 같아서 어떠한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은 평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터 위에 흔들리지 않을 사도들이 선택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특성은 어떠한 경우라도 동일합니다. 기초석과 같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또 믿으면 보이지는 않더라도 살아있는 운동력으로 인해 성령께서 원하시는 목적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목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제사장’에 이르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정’에 포함된 형상이

‘거룩한 제사장’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와 같이 되라고 계시를 풀어주는 것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숙명)
예정이 확정이 되도록
계시에 반응하는 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주목하여 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택자,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는 고난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자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계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말씀을 듣지만 그 중에 택함 받은 사람만 말씀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최종적으로 택함 받은 자를 알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베드로가 예정과 예지예정 방식을 교차하는 이유입니다.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해 (광야에 정체하여) 결국 고난과 시험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8절)


그렇듯 ‘나그네의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전 삶의 방식으로(애굽의 종) 회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자’는(주어) 서술어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즉 어두움에서 불러내었기 때문에 

이전 것을 버려야 하며 

기이한 빛에 들어가기 위해 

빛의 속성을 가져야 합니다. 

 

또 ‘택함 받은 백성’은 

빛의 속성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그 복음대로 변함없이 ‘순례자’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즉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본’을 따르는 행동이 ‘구원’과 직결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자신들에게 ‘본’을 보여주셨는지를 문제를 통하여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성령받기 전에는 ‘고난’을 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정에 포함된 자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가 어떤 상태에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또 어떠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지를 미리 전달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는 그가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말씀과 성령에 순종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이와 같은 계시들을 깨달아 가면서 영원하고 더 가치 있는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그렇게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 또한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어야 하는지 또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그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미래에도 통용되는 ‘Text’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현재를 미래의 예정에 일치시키며 사는 순종하는 사람들로 구성되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2절)

모든 것이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에 순종하면 더욱 고귀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 예정의 모습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합니다. 그리고 고귀한 일이 있어야 거룩한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성경은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뒤를 이어 ‘빛을 드러내며 복음을 전파하는 일’ (고귀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예언을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시면서 십자가의 ‘고난’에 이르시기까지 구약의 율법을 하나하나 완성시키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이유는 연약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복음전파와는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율법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똑같이 연약한 상태에서 그대로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거룩한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주께서는 
세상과 화해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고자
(율법의 목적)
‘거룩한 제물’이 되는 방법을 택하셔서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셨습니다.


쉬운 길을 가신다거나 또 고난을 피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짊어질 대가를 하나하나 몸소 치루시면서 하나님의 뜻(율법)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방법은 성령과의 연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주께서 보이신 ‘고난’의 본을 따라가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그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본문은 '대제사장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