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믿음은 힘써 싸워 지키는 것입니다 (설교: 김정국 목사)

jk-kim 2025. 1. 31. 19:17

https://youtu.be/gGicn573Ua8

 

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1:3 ;1:17-21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러한 고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면서도 때로는 마음 한구석에 의심이 들때가 있어요 그리고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하루 끝에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마치 길을 잃은 나그네와 같이 심정으로 흔들리고 그런 흔들리는 믿음 속에서 진정한 길을 찾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우리의 심정을 아는 듯이 유다서는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길을 밝혀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삶에 지쳐 신앙이 흔들릴 때, 유다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고, 믿음을 굳건히 지킬 힘을 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죠. ​ 하지만 유다의 신앙이 처음부터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에요.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전해 듣고 그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믿음 안에서 새로워졌고 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그의 삶은 어쩌면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어요 왜냐하면 그가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우리처럼 그렇게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평범한 유다도 믿음의 항해를 위해 정확한 나침반을 제시할 정도로 신앙이 굳건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유다는 그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성령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을 행동하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붙잡아야 합니다.(17절) 이것은 마치 배가 항해할 때 나침반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1930년대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 아래에서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경찰이 가정을 수색하며 성경을 압수했지만, 한 노인은 성경을 암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밤마다 촛불 아래에서 성경 구절을 외웠고, 결국 성경은 압수되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은 그의 기억에 새겨졌습니다. 몇 년 후,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그들의 믿음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출처 입력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는 일은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기초가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가 항상 닻을 내리고 닻줄을 붙잡듯이, 우리도 성령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붙들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게 첫 번째고 하나님의 기도로 붙들려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말씀도 중요하지만 기도로 붙들려 있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강하게 해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 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 영혼이 새롭게 되어 지지 않는다 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져 간다라는 것을 또한 의미하고 있어요. 또한 우리의 믿음이 확고해 지지 않는다 라는 것은 우리가 기도가 부족하다 라는 것을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항상 새로워 지지 아니하고, 확고해 지지 않는다면 더욱 더 붙들릴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한다' 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

 

 

세 번째는, 인내하면서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야 돼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영원한 나라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애물들과 방해물들을 헤치고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파도에 의해 배가 출렁이듯이, 우리의 삶에도 힘든 순간이 찾아오게 되지요. 하지만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여 끝까지 견딘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를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목사였던 존 번연은 신앙을 위해 감옥에서 12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소망을 잃지 않았고, 그 결과 ‘천로역정’이라는 귀한 책을 남겼습니다.

출처 입력

그의 삶은 복음을 위한 믿음과 인내가 고난을 이겨내는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 ​그가 감옥에 갔던 것은 신앙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 생각이 흐려 질 때가 있고 내 마음도 흔들릴 때가 있는데 그래서 끝 없는 믿음의 싸움에 관한 책을 출판하게 된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믿음은 싸워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라는 거에요. 싸워서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만일 당시 믿음을 위해 더 철저하게 싸웠더라면 오늘날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유다서의 수신지역이면서 계시록에 나오는 이 지역들이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은 참 맛을 내는 소금의 양이 결정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들이 어딘가요? 팔레스타인과 이란과 시리아, 터키 이런 지역들입니다. 이런 지역들은 오늘날 매스컴에서 자주 등장을 하는 나라들이에요.

 

요새는 이스라엘과 싸우고 뭐 여러 가지 다툼들이 많이 있는 지역들이죠.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유다서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어요. ​참 맛을 내는 신앙인들이 결정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여전히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포가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축복의)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라는 거예요. "너희는 세상이 빛이다. 소금이다"라는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믿음대로 순종하는 않으면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요. 이 말은 빛이 되고 소금이 되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어느 나라 => 유다서의 수신 지역 =>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있었던 그 지역들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쓰여졌지만 그 믿음이 결국 믿음이 아니었다 라는 걸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어떻게 돼요? 나도 한 때는 믿음이 있었어 나도 한 때는 믿음이 견고 했었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어느 말씀에도 그걸 부인하지 않아요 어떻게 말씀하고 있죠?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믿음은 다 받았어요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 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믿음을 한 번에 하나님께서 주셨다

"힘써 싸워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필요를 느꼈다 라는 거예요 어떤 필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된다 라는 필요를 느꼈다. 라는 거예요.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을까요? 그 말씀을 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 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마지막으로 '밀알'이 된다 라는 거죠. 썩어 죽어야만... 유다서는 순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어요.

 

'말만 많은 사람들은 필요없다'. 말만 가지고 사역하는 사람들이 공동체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순교를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말만 번지르르 했지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어요 결국 행함이 없는 믿음은 한 때는 살았으나 후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입니다.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가요? 예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라는 거예요.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면서 목숨을 건져 냈거든요. 그리고 나서 유다서의 수신지역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해요.

 

우리나라의 신사 참배 사건과 유사하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옥에 갇혔을 때에 일부 타협했던 사람들이 교회를 지키고 있었어요. 그런데, 순교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옥에 갇힌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보시기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독교는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만은 그렇지 못한 신앙의 피가 우리에게는 섞여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단이나 신앙을 흔들 만한 여러 사건 사고가 생기면 믿음의 사람들이 떠나는 사건들이 많이 나타나요 우리가 그들의 후손 이에요 타협하는 후손.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 기도하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그렇게 행동을 하지 못하잖아요. 순교를 각오하며 결단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다 닮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발생하는가?

 

유다서는 바로 그 메시지를 말씀하고 싶었던 거에요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장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반면에, 신앙이 후퇴 하면 후퇴 할수록 후퇴하는 상황도 만들어진다 라는 거요. 그래서 그 지역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더 큰 자신의 신앙을 몰고 온 이슬람 신자보다 수준이 못하다 그러면 또 타협하겠지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그들이 후손이 이슬람 신자가 되는 겁니다.

 

 

유다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유다가 '야고보의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가 했던 메시지, 가장 기억 남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믿음이 있었는데 우리가 단 번에 받은 믿음이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또 한 번에 받은 구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을 이제 유다가 짚고 넘어가는 거예요. 왜 짚고 넘어가요? 그게 형이 누구이기 때문에 야고보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AD62년경에 먼저 순교했습니다.

 

그 후 십 년 후에 유다가 뒤이어 순교했다고 나와요. 야고보는 그 메시지를 전하고 순교를 했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신앙의 핍박이 왔을 때 순교를 거부하지 아니하고 순교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보낸 수신 지역들 있잖아요 그 지역들에게 이제 누군가가 메세지를 해야 되는데 거짓 지도자들이 다 한 자리씩 차지 했단 말이에요 순교를 하지 않은 사람들 그 중에서 자꾸 우리나라의 신사참배 그 시대가 자꾸 오버랩이 되요.

 

'내가 그때 이제 살아 있었던 나는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결단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제 저와 같은 약간 재능이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쉽게 결정할 지도 몰라요. 할 수 있는 게 대형교회 목사님들처럼 유학도 하고... 이렇게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단 말이죠. 그런데 그 목사님들에 비해서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순교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야고보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근데 죽기 전에 유다에게 "나 부활하신 예수님 만났어" 예수님에게 형제 넷이 있었잖아요. 그 중에 이제 야고보와 유다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에게 나타나셔요. 처음에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가 그 다음에는 남은 열 제자에게 그리고 오백 명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서 주의 형제 야고보에게 보이시고 마지막에 사울에게 보이셨습니다 (고전15:6) 야고보가 예수님을 만나고 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 중에 유다만 그것을 받아들이게 돼요.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라고 하고 먼저 순교를 하죠. 그리고 유다도 그 말씀을 똑같이 증거를 해요. "믿음은 싸워서 지키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유다도 죽게 됩니다.

 

야고보서와 유다서를 통해,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그 지역들에게 성령이 메시지를 증거를 끊임없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넘어가는 거예요. ​ 로마지역보다 순교자의 숫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결국 이 지역들은 수장되어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아시지만 주님의 사랑은 그 지역들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시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죠. 그것을 아시면서 주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통해 순교하기 까지 그 지역을 돌아보게 하시는, 그들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돌아보기를 원하셨던 분 그분이 바로 하나님 이십니다.)

 

 

여러분 유다서의 나침반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요?

 

그것은 믿음은 싸워 지키는 것인데 그 믿음을 지킬 때만 이(약속의) 효력이 있다 그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신앙의 껍데기만 남게 된다. 영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깨어 있지 못하는 사람들'껍데기'가 되는 거예요. 결국에는 이런 흔들리는 사회 속에서 그 현실을 뛰어넘는 영성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왜 십자가형을 피하려다 다시 돌아와 죽음을 맞이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라는 거예요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간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시 돌아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런 신앙인이 되기로 기도했기 때문에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사도 바울이 왜 그런 선택을 했겠습니까? 바로 로마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 하고 나는 거기에서 순교하리라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오늘날에도 현실은 우리에게 여전히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서는 "그 현실의 두려움을 넘어서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두려움을 넘어서는 믿음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끝은 평안이 기다리고 있고 부활이 기다리고 있으며 주님의 인정이 기다리고 있어요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하였도다" ​

 

 

            여러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2:24) ​ 따라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순종이 안되거든 순종할 수 없거든 기도를 해야 되죠. 여러분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인내함으로 인해서 많은 열매들이 맺혀 질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찬521. 구원으로 인도하는 / 찬357. 주믿는 사람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