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성령안에서 깨우치며 순종에 이르십시오 (고전10:1-15) 김정국 목사

jk-kim 2022. 11. 5. 20:24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경은 광야의 홍해사건과 구름기둥은 세례(침례)

만나와 반석으로부터 나오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곧 유대인들은 (구름기둥과 홍해와 만나와 반석의 물을 통해) 오실 메시야를 만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미 임하신 그리스도를 믿어 똑같은 세례(침례)를 받았기에 둘 다 한 분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반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원수 되었던 사람들을 그의 피로 대속하사 묶으셨기 때문에 한 핏줄로 된 형제와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5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

 

그러나 우리가 그들과 그리스도안에서 한 핏줄로 된 형제와 다름없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범죄하여 멸망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똑같이 범죄하여 멸망받을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이것을 바울은 ‘본보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6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후대의 형제가 이전의 형제들의 과오를 보고 본을 받게 하기 위해서 광야의 백성들을 본보기로 삼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이것은 신약 초기기독교시대에 일어난 극심한 핍박과 박해가 후대에 일어날 박해에 ‘본’이 됨도 알려주시기 위하여 기록하게 하심으로 마지막 남은 자들을 불러 모으시려는 주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본보기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과거 형제들의 과오를 통해 교훈하시면서 동시에 현재를 기록하게 하심으로 미래에 대한 소망까지 품게 하셨습니다.

 

즉 성경은 한 핏줄 된 형제의 구원의 역사뿐만 아니라, 심판의 행적 또한 기록되어 있으므로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해석해주시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오늘날 어떠한 자세를 취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합니다.

 

6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본보기가 된 형제들의 죄악] (6-11절)

① 악을 즐겨함(6절)
② 우상숭배 (7절)
③ 음행(8절)
④ 주를 시험함(9절)
⑤ 원망함 (10절)

 

바울은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과거 유대인들의 죄악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고 설명하면서 성령께서 이와 같은 심판의 계시를 드러내셨다는 그 의도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예표되는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신 것은 '구원'과 함께 '심판'의 의미도 분명하게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불신자가 아닌 '교회 공동체'에 알려 주셨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십시오.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구원을 종말론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에서 이미 언급한 말씀과 상호 연관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한 인식과 개념에 대해서 자신이 믿고 있는 그대로 고린도교인들이 '본'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구원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린도 교인들이 이해하도록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경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의 신앙관이 정답이기 때문에 그 모범답안에 일치하도록 믿음과 구원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넘어지는 자는 세상의 미혹을 받아 말씀의 경계선 밖으로 나간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벗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 밖을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처럼 미혹을 받아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죄로 인하여 마지막 때에 그 행위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똑같이 우리의 조상들이 그와 같이 행하여 심판받았기 때문이며 이것을 성경의 본보기로 삼으셨다는 것을 깨우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작정계획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13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본문에서는 이 구절을 해석하기가 가장 난해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시험당할 것 까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신자들은 그의 보호를 받아 모든 시험을 이긴다’는 예정론의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해석은 앞뒤 문맥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앞의 문맥이 유대인들의 '본보기'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앞의 내용이 유대인들의 죄악을 본받지 말라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13절에 들어갈 말씀은 그러한 본을 받지 말라는 내용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 뒤의 문맥까지 살펴보면

 

14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모든 결론이 14절에서 정리가 된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4절을 통해 (바울이 복음으로 품은) 사랑하는 자들에게 결국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서 그 동안 긴 설명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의 구원관도, 이스라엘의 본보기도, 전부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는 말씀을 전하기 위한 보조 설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구조화 시켜보면

 

종말론적 구원론 ☞ 본보기 ☞ 13절(?) ☞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로 나타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14절의 결론이 “우상 숭배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내용이므로 13절은 율법폐기론과 연관된 말씀이라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당연히 지켜야되는 율법인가? 아니면 모든 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으로 폐지되었는가?에 대한 입장에 따라 고린도교인들의 행동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린도교회 신도들이 모든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십계명의 우상숭배에 대한 율법을 어기게 된 것이라고 바울은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신도들이 유대인으로만 구성되었다면 이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터인데 아무래도 이방인이 많다보니 ‘율법폐기론’에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수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할례와 음식문제까지 꼬투리잡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할례에 대한 문제까지는 확실히 알기는 알겠는데 그 다음 단계로의 진입이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할 '계시'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13절은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성령님의 입장 즉 '계시'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방황하는 고린도교회 신도들이 이러한 문제로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1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신다라고 하였는데 무엇으로부터 피할 길을 내신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마귀의 시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 고린도교회의 상황이 마귀의 시험에 봉착하였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즈음에 어떻게 피할 길을 내실까요?

 

사도바울을 통해서입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을 통해서 그 답을 알려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확하게는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성령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계시'를 고린도교인들에게 전달함으로써 피할 길을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계시하심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는 누구나 시험을 이긴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드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승리하지만 믿지 않으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승리의 성패가 사람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믿음과 그 경외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로 피해야 하는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리스도에게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면서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보호안으로)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살펴보면 이 본문이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가 말한 말씀의 잘못된 해석을 지적하면서 올바른 말씀을 다시 해석하심으로써 그 시험을 이기신바 있습니다. (눅4장)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그러한 본을 보이셨는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러한 '본'을 의도적으로 섭리하신 것은 예언의 말씀대로 증명해 나가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귀에게 이끄사 마귀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 성령 곧 거룩한 영이 함께 계시면, 거룩과 그렇지 아닌 것의 분별 정도는 능히 할 수 있게 된다는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지만 말씀분별에 대한 시험은 성령과 함께하면 그 미혹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친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신도들이 만일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교회가 침륜에 빠질 것이나 이기게 하신다고 하셨으므로 교회는 주님의 보호를 받게되어 풍성한 나무 가지와 같이 힘있게 뻗어나가는 것입니다.그러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성도들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지에 붙어있으므로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하심은 교회의 보호를 보장합니다. (주의 뜻을 드러내심으로써... )

이 모든 것은 시험당할 즈음에 교회가 그와 같은 시험을 이기도록 사도바울을 미리 예비하사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또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게 하심으로 율법을 공부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이 율법에 대한 바른 해석을 통하여 이방인으로 하여금 ‘율법폐기론’과 같은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불러 3년간 미리 연구하게 하셨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가 사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리 예비하셨으므로그 지혜를 측량할 수 없고 사단의 지혜로도 이를 막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먼저 (사도인) 바울을 예비하셔서 세상에 그 지혜를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을 것이니 이는 말씀을 믿지 않고 미혹을 받아 불법에 이르렀기 때문이며(고전6:9,10) '하나님의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애써 외면한 채 평소 믿고 싶은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와 같아서 능히 분별치 못함으로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알려 주려 하는 것입니다. (고전15:2)

 

따라서 사도바울은 그 무엇보다도 '말씀(계시)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씀에 대한) 깨우침과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 

               굳게 지키고

(너희가)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전15:2)